나는 어제의 빙도 고수 차를 떠올리며 건엽이 아닌 말린 엽저를 꺼내 텀블러에 한 꼬집 뿌려 들고 나갔다. 건엽처럼 생겼지만 색상은 다르고 노르스름한 톤이라 보이차로 오해될 뻔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그 빙도 고수 홍차를 텀블러에 담아 산책 중간 반환점에서 마시고 내려와 발씻고 다시 마셨다. 맛있네 싶었고 요즘은 황톳길 관리가 안 돼 말랑한 찰흙 느낌도 없고 논바닥이 말라비트져 걷는 재미가 떨어진다.
예산이 줄었는지 다른 데 쓴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걷는 여정이 주는 작은 기쁨은 남아 있었다.돌아오는 길에 애완닭 할아버지를 만났다.
진심으로 그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번호를 알아보고 언제 산책 나오시는지 파악해 그 시간에 맞춰 닭 구경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닭이 할아버지 품에 꼭 안겨 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며 이제 움직임이 느려진 걸까 싶었다. 그래서 병아리 얘기를 들으니 눈앞의 새끼가 오늘도 컸다며 풀어놓고 오셨단다.
병아리는 정말 빨리 크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음에도 또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산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너무 유쾌하다.
발씻는 도중 단체 관광객들이 들이닥쳤다. 1반부터 6반까지 있다고 설명하던 이들이 차례로 여기서 신발을 벗으라 하고 사진도 찍었다. 맨발 걷기에는 하지 말자는 사람도 있어 차분히 흘려보내는 게 다행이었다.
그분들과의 소리와 말투를 의외로 크게 느꼈다. 그리고 전화가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레 하나를 보았는데 소매에 끼어 있던 송충이 같아 접어 팔꿈치 쪽으로 압살했던 모습이 생각보다 큰 죄책감을 남겼다.
체액이 다 나온 듯한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오자마자 빨래를 했다. 오늘의 작은 일상들이 오히려 마음의 책상을 정리하는 듯했다.
좋은 곳으로 가렴...